우리나라 꽃
태극무궁화예술선양회

무궁화란
무궁화 무궁화란

나라 꽃으로서 무궁화의 의미

1. 무궁화의 의미

무궁화(無窮花)는 피고, 지고, 또 피어 무궁무진 피어나는 꽃에서부터 유래된 명칭이다. 그래서 무궁화의 꽃말은 '일편단심·영원함'이다.
무궁화는 7월 중순부터 10월 중순 서리가 내릴 때까지 약 3개월간 꽃이 피며, 한그루에 약 3,000송이의 꽃을 피운다. 무궁(無窮)이란 ‘다 함이 없다’는 뜻이다. 이렇게 많은 꽃을 피울 수 있다는 것은 그 만큼 강한 생명력을 지녔음을 뜻한다.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가 끝없이 새로운 세포를 교체해가며 생명성을 유지하듯이 무궁화가 매일 새로운 꽃을 피운다는 것은 장생(長生)과 불사(不死)의 상징성을 나타낸다고 볼 수 있다. ‘무궁(無窮)’은 바로 이러한 의미를 담은 꽃 명(名)일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강인한 생명성은 수많은 외침에도 불구하고 굽히지 않는 의지로 굳건히 버티고 지켜온 우리민족성과도 닮았다고 볼 수 있겠다. 그래서 일제강점기 때 독립운동가들은 무궁화를 우리민족의 꽃으로 태극기와 함께 상징화하였고, 그 정신을 가슴에 담았었다.

그리고 무궁화의 옛 명칭은 환화(桓花)였는데, 이것은 광명의 꽃이란 뜻이다. 조선 중종 때 찬수관(纂修官) 이맥이 편찬한 『태백일사』「신시본기」에 〈自天光明謂之桓也자천광명위지환야 自地光明謂之檀也자지광명위지단야〉라는 구절이 있다. ‘하늘에서 스스로 내리는 광명을 ‘환桓’이라 하고, 땅에서 스스로 밝음을 ‘단檀’이라 한다고 하였는데 하늘에서 내리는 광명은 바로 태양을 의미한다. 따라서 ‘환화(桓花)’는 ‘광명의 꽃’ 즉 ‘태양의 꽃’이라는 의미가 담겨있다. 따라서 무궁화는 바로 태양을 상징하는 꽃이 된다. 홍천 무궁화 수목원에 다음과 같은 글이 적혀있다.

무궁화는 태양의 꽃이다.
태양과 함께 꽃을 피우고 지며
다시 태양과 함께 새로운 꽃을 피운다.

무궁화 꽃잎 중앙에 붉은 단심이 있고
꽃잎을 따라서 단심선이 뻗어 나가는데
그 모양이 태양을 연상케 한다.

우리민족은 예로부터 태양을 숭상해왔다. 오늘날까지도 새해 첫 날은 해맞이를 하기 위해 높은 산이나 바닷가를 찾는 사람이 많다.
환국(桓國), 단국[檀國, 배달국], 조선(朝鮮)이 모두 태양과 광명을 상징하는 나라 이름이다. 따라서 이러한 광명의 나라에서 태양을 상징하는 꽃으로 신성시하였던 꽃이 바로 무궁화이다. 무궁화나무는 기록상으로는 6,200년 전부터 심어왔고, 배달국, 단군조선시대에도 심었으며, 신라는 근화향(槿花鄕)이라 불리었고, 고려 때 장원급제하면 모자에 꽂았던 어사화가 바로 무궁화였다는 기록이 있다. 그리고 조선시대를 거쳐 일제강점기 때에 일제의 탄압에도 불구하고 독립운동가들에 의해 명맥이 유지되어왔던 꽃이 바로 무궁화였다. 우리민족의 시작과 함께 심어왔으며, 신성시 여겨왔던 우리 민족의 꽃이며, 나라의 꽃이다.

2. 나라꽃 무궁화 가치

더러는 지금도 무궁화가 나라꽃으로 제격이 아니라는 이들도 있는게 사실이다. 국내 분포지역이 한정적이고 진딧물이 많이 끼며, 꽃 모양이 최선이 아니라는 등의 논리를 내세운다.
그러나 무궁화는 단지 아름다움이나 꽃의 생태적인 현상을 넘어 우리 민족의 역사와 함께 면면히 이어져 온 민족의 꽃이다. 예쁘다 예쁘지 않다는 논란에 대해서는 굳이 반박할 의미가 없다. 가령 멕시코의 선인장, 그리스의 올리브, 캐나다의 단풍나무 같은 것은 꽃이 아니라도 그 나라의 상징으로 삼고 있으며, 그 국민이나 외국민이 인정하고 또 귀하게 여기는 현실이 아닌가.
또 스코틀랜드 같은 곳에서는 그 애국주의적인 전설 하나 때문에 엉겅퀴 같은 독특한 식물을 국화로 지정하고 있다. 중세기 덴마크 군대가 침략했을 때 스코틀랜드의 엉겅퀴 숲에 매복했다가 그 가시에 찔려 패퇴한 유래로 인해 민족의 상징이 되었다고 한다.

무궁화를 두고 서양에서는 샤론의 장미라 하여 아름다움을 칭찬했고, 《시경》에는 흰 무궁화를 순영(蕣榮)이라 하여 아름다운 여인에 비유하였다. 무궁화는 이쁜 꽃이란 이미지 보다는 고아하고 아름다움을 간직한 꽃의 이미지를 지닌 꽃이다. 또한 꽃잎에는 사포 나린 (C27H32O152H20)이라는 귀한 성분이 있고, 껍질과 뿌리는 약성 뛰어나 혈액 개선제나 간질약으로 사용된다고 한다. 이처럼 아름다움과 뛰어난 약성을 지닌 무궁화를 우리 선조들은 유구한 역사한 함께 신성시 여기며 심어 왔다.
무궁화나무는 진달래나 개나리처럼 산에 들에 많이 자생하며 피어나는 꽃이 아니다. 그래서 우리 선조들은 무궁화를 의도적으로 심어왔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발해 대야발이 지은 《단기고사》에 의하면 제5세 단군 구을 16년(BC 2084)에 고력산에 제천단(祭天壇)을 쌓고 근수(槿樹-무궁화나무)를 많이 심었다는 내용이 나온다. 그리고 고려말 행촌 이암이 적은 《단군세기》에는 신성한 성역인 소도(蘇塗)에 천지화(天指花)를 심었다는 내용이 나오는데 천지화는 바로 무궁화를 지칭한다. 당시 미혼 자제들은 경당에 다니며 글쓰기와 활쏘기를 배웠는데 이들이 돌아다닐 때 천지화(天指花)를 머리에 꽂았으므로 사람들은 그들을 천지화랑(天指花郞)이라 불렀다고 한다. 이것이 계승되어 신라시대의 화랑(花郞)이 되었다.
무궁화는 우리선조들이 신성시 여겼던 꽃이며, 우리민족의 얼이 담기고 역사가 담긴 꽃이다. 그러므로 무궁화에 대한 보다 깊은 애정과 사랑으로 우리민족의 꽃으로 더욱더 가꾸고 선양해 나가야 할 것이다.

3. 무궁화의 역사적 명칭

무궁화의 다양한 명칭

무궁화(無窮花)의 명칭은 환화(桓花), 근화(槿花), 목근화(木槿花), 훈화(薰華), 천지화(天指花), 소(蘇)라고 칭했고, 사서삼경 중의 하나인 《시경》에는 순화(蕣華), 순영(蕣榮)이라 하였다. 순(蕣)은 ‘무궁화 순’으로 단순히 ‘순(舜)’으로도 쓴다. 순(舜)은 ‘순임금 순’ ‘무궁화 순’자이다.
특히 순화(蕣華)는 흰 무궁화를 뜻한다.
무궁화의 학명(學名)은 ‘히비스커스 시리아쿠스(Hibiscus syriacus L.)’인데, ‘히비스’란 이집트의 아름다운 여신이며, ‘커스’란 닮았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아름다운 여신을 닮은 꽃’이 바로 무궁화라는 뜻이 된다.
그리고 무궁화나무는 목근(木槿), 근수(槿樹), 소목(蘇木), 부소(扶蘇)라 불렸으며, 부상(扶桑)도 뽕나무가 아니라 무궁화나무라고 한다.
이 내용은 『단재 신채호 전집』에 조선의 고대 신화(神話) 「구미호와 오제(五帝)」에서 찾아볼 수 있다.

「····수긍이 묻기를 “오제(五帝)는 천신의 조력자인데 어떻게 선생이 이를 부렸으며, 오색(五色) 나무는 무슨 나무이기에 신(神)이 이 나무에 의거(依據)합니까?”
“이 나무 이름은 부상(扶桑)이라 한다. 또 일명 무궁화나무라고도 한다. 세상 사람들이 이 부상을 뽕나무의 일종으로 아는데 이것은 옳지 않다. 무궁화는 부여(扶餘)의 신성한 나무인데 그 잎이 뽕나무 비슷하다하여 부상(扶桑)이라 일컫는다. ····」


무궁화 나뭇잎이 뽕나무 잎을 닮았으므로 ‘뽕나무 상(桑)’자를 쓰며, 부여(扶餘)의 신성한 나무라 하여 부상(扶桑)이라 한다는 것이다. 이 말에서 ‘부소(扶蘇)’이 뜻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부소(扶蘇)도 역시 부여의 신성한 나무라 볼 수 있으며, 소(蘇)는 부여의 신성한 나무의 꽃이라는 의미라고 볼 수 있겠다.
다시한번 정리해보면 무궁화(無窮花)는 환화(桓花), 근화(槿花), 목근화(木槿花), 훈화(薰華), 천지화(天指花), 소(蘇), 순화(蕣華), 순영(蕣榮), 순(蕣) 등의 이름이 있고, 무궁화 나무는 목근(木槿), 근수(槿樹), 소목(蘇木), 부소(扶蘇), 부상(扶桑) 등으로 불리어 졌다는 것을 알수 있다.

‘무궁화(無窮花)’라는 명칭의 최초 사용 시기

‘무궁화(無窮花)’라는 명칭은 언제부터 사용되었던 것일까?
기존의 ‘목근(木槿)’ 또는 ‘근화(槿花)’와는 아주 다른, ‘무궁화(無窮花)’라는 명칭이 최초(最初)로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고려시대부터이다. 고려 고종 때의 문장가로 유명한 이규보(李奎報 1168~1241)의 문집인《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권 14의 고율시(古律詩) 가운데에 ‘문장로(文長老)와 박환고(朴還古)가 무궁화를 논하여 지은 시운(詩韻)을 차(次)하다’라는 제목의 내용을 시에 앞서 적어 놓았는데 거기에 무궁화라는 말이 처음 등장한다.

長老文公東皐子朴還古各論槿花名或云無窮無窮之
意謂此花開落無窮或云無宮無宮之意謂昔君王愛此
花而六宮無色各執不決因探樂天詩取其韻各賦一篇
亦勸予和之

장로 문공과 동고자(東皐子) 박환고가 각기 근화(槿花)의 이름을 두고 논하는데, 한 사람은 ‘무궁은 곧 무궁(無窮)의 뜻이니, 이 꽃이 끝없이 피고 짐을 뜻함이라’하였고, 또 한 사람은 ‘무궁은 곧 무궁(無宮)이니, 옛날 어떤 임금이 이 꽃을 사랑하여 온 궁중〔六宮〕이 무색해졌다는 것을 뜻함이라’하였다. 이처럼 각자가 자기의 의견만을 고집하므로 끝내 결론에 이르지를 못하였다. 그래서 백낙천(白樂天)의 시운을 취하여 각기 한 편씩을 짓고 또 나(이규보)에게도 화답하기를 권하였다.


이로 미루어 목근(木槿)또는 근화(槿花)로만 일컬어 오던 것이 이미 고려 때에 ‘무궁화’로 그 이름이 일반화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조선시대 ‘무궁화’ 명칭에 대한 고찰

근세조선시대에는 세종 25년에 훈민정음이 창제되면서 "무궁화"라는 한글 명칭이 처음으로 쓰이게 되었으며, 실학자들의 실학서적에 무궁화에 대한 많은 기록을 보이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최세진은 《사성통해(四聲通解)》상권에서 "목근화를 민족의 상징이다"라고 하였고 기타 최세진의 훈몽자회, 허준의 동의보감, 홍만선의 산림경제, 서유구의 임원경제지, 이익의 성호사설, 만물보, 등 여러 문헌상에 무궁화에 대한 기록이 있다. 조선시대 ‘무궁화’란 명칭이 나타나는 문헌들을 시대별로 나열하면 다음과 같다.

- 槿 櫬也今俗呼木槿花 무궁화 《사성통해(四聲通解)》, 1517년 간행
- 槿 무궁화 ‘근’ 俗呼木槿花 《훈몽자회(訓蒙字會)》, 1527년 간행
- 槿 무궁화 ‘근’ 《운회옥편(韻會玉篇)》, 1536년 간행
- 木槿 무궁화 《동의보감(東醫寶鑑)》, 1613년 간행
- 木槿花 無窮花 朝華暮落 《사류박해(事類博解)》, 1829년 간행
- 槿 무궁화 ‘근’ 木槿, 朝華暮落, 亦可食 白曰椴 赤曰櫬, 蕣, 舜 《字類註釋》, 1856년 간행


《동의보감(東醫寶鑑)》에서 무궁화를 기록한 것은 약재의 명칭이다. 한자는 목근(木槿)이라하고 한글로 ‘무궁화’라고 적고 있다. 《사류박해(事類博解)》만 한자로 ‘無窮花’라고 적고 나머지는 모두 한글로 ‘무궁화’라고 표기하고 있다. 따라서 조선시대에는 ‘무궁화’라는 꽃 이름이 일반화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참고 : 『무궁화대전1』 용진민족문화연구원, 김순석(金淳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