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궁화 역사
무궁화 무궁화 역사
고대로부터 신성시 되었던 무궁화
1. 신단수 무궁화
앞서 언급하였지만 고대 환국이나 배달국, 단군조선 시대에 무궁화는 제천단(祭天壇)이나 소도(蘇塗) 등에 심어져 신성시되었던 꽃이었다.
제천단(祭天壇)에 심었기 때문에 단수(壇樹) 혹은 단목(檀木)이라 불렀으리라 짐작할 수 있다. 고려말 행촌 이암이 적은 『단군세기』에
11세 도해 단군 경인 원년(BC 1891)에 열두명산의 가장뛰어난 곳을 골라 국선(國仙)의 소도(蘇塗)를 설치케 하고 많은 단수(檀樹)를 둘러심은 후 가장 큰 나무를 골라 환웅상을 모시고 여기에 제사지내며 웅상(雄常)이라 이름했다. ⵈⵈ 겨울 10월에 대시전(大始殿)을 건립하고 환웅 상(像)을 받들어 모셨는데
坐於壇樹之下桓花之上 如一眞神 有圓心
단수(壇樹) 아래 환화(桓花)의 위에 앉아 계시니 하나의 살아있는 신이 둥근원의 중심에 앉아 있는 것 같았다.
라고 표현하고 있다. 앞서 《태백일사》 〈신시본기〉에 “하늘에서 스스로 내리는 광명을 ‘환桓’이라 하고, 땅에서 스스로 밝음을 ‘단檀’이라 한다”라는 구절에서 단(壇, 檀)과 환(桓)은 사실상 같은 뜻이다. 광명의 꽃 환화(桓花)는 근화(槿花)이며 무궁화이다. 그리고 단수(壇樹)는 ‘광명의 꽃나무’로 역시 무궁화 나무로 보아야 한다. 즉 “무궁화나무아래 무궁화 꽃으로 둥근원을 그리고 그 위에 앉아 계시니 하나의 살아있는 신이 둥근원의 중심에 앉아 있는 것 같았다.”라는 의미로 볼수 있겠다. 제천단에 심었던 단목(檀木)의 본래 이름은 ‘밝달나무 혹은 백달(白達)나무였다.’ 즉 박달(朴達)의 원음이 백달(白達), 배달(倍達)로 밝다는 뜻이다. ‘밝다’를 한자로 옮기면서 배달(倍達) --> 백달(白達)-->박달(朴達)이 되었음을 《규원사화》에서 밝히고 있다.
단군’이라함은 박달나라(檀國, 배달나라)의 임금을 말하는 것이다. 우리말에 ‘단(檀)’을 ‘박달’ 혹은 ‘백달’이라고 하며, ‘군(君)’을 ‘임금’이라고한다. 당시에는 한자가 없었던 까닭에 단지 ‘백달임금(배달임금)’이라고 하였던 것을, 뒤에 역사를 서술하던 자가 번역하여 ‘檀君’이라 하였고, 다시 후세에 전해지며 단지 ‘檀君’이라는 글자만 기록하게 되었기에 ‘檀君’이 ‘백달임금(배달임금)’의 번역인 줄을 알지 못하게 되었다.
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것을 다시 정리하면
檀 = 朴達 = 白達 = 倍達 = 밝다(환桓 하다)
단 박달 백달 배달
檀君 = 朴達임금 = 白達임금 = 倍達임금 = 밝달임금(광명임금)
단군 박달 백달 배달
檀木 = 朴達나무 = 白達나무 = 倍達나무 = 밝달나무(광명나무)
단목 박달 백달 배달
라고 표현된다. 즉 단수(壇樹), 단목(檀木)은 광명의 꽃인 환화(桓花)가 피는 나무로서 ‘박달나무(밝달나무)’였으나 이것이 오늘날에는 자작나무의 일종인 ‘박달나무’로 해석되어버린 것이다. 아마도 조선시대까지는 단목(檀木)이 무궁화나무라는 인식이 어느정도 남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조선시대 쓰여진 2편의 시에서 그러한 근거를 찾아 볼 수 있다.
먼저 홍양호(洪良浩 1724~1802)의 《이계집耳溪集》 속의 시에 그 내용이 나온다. 그는 조선 정조 때 백두산 부근의 함경도 경흥부사로 재직하면서 1777년에 태조 이성계의 왕업터전을 방문하여 〈토우기土宇基〉라는 시를 지었는데 그 내용 중에 하나의 단서를 찾을 수 있다.
檀木槿花三千里 단목(밝달나무)에 피어나는 무궁화 삼천리
단목근화삼천리
不階尺土奄有之 한뼘의 땅도 덕 보지 않았건만 모두 다 가졌구나(자수성가한 이성계 표현)
불계척토엄유지 (不階尺土 : 조상이 남긴 한뼘의 땅도 덕보지 않다. 奄有 :다 가지다.)
長白山高靑海濶 백두산은 높고 청해(동해)는 넓나니
장백산고청해활
緜緜瓜瓞無窮期 면면히 이어온 자손들 무궁하리라
면면과질무궁기
‘단목근화삼천리(檀木槿花三千里)’의 구절은 해석에 따라 ‘단목(檀木)’과 ‘근화(槿花)’가 한 종류가 되거나, 아니면 두 개의 별개의 종류가 되게 된다. 이 둘은 다시 마지막에 ‘무궁(無窮)’이란 구절에 귀착된다. 만약 단목(檀木)은 자작나무의 일종인 박달나무로 본다면 ‘무궁’과는 잘 맞지 않는다. 그러나 무궁화 나무로 본다면 ‘단목’과 ‘근화’와 ‘무궁’ 이 세가지가 잘 맞아들어 매끄럽게 해석된다.
그리고 또 다른 한가지 시구절은 조선 현종 때 문신이자 학자인 정두경(鄭斗卿, 1597~1673)의 《동명집》에 실려있는 〈단군사(檀君祠)〉라는 시이다.
有聖生東海 于時竝放勳 •성인이 있어 동해에 태어나셨네
유성생동해우시병방훈 •때는 방훈(요임금)과 나란하더라
扶桑賓白日 檀木上靑雲 •부상에서 밝은 태양을 맞이하고, 단목에 푸른구름 걸렸네.
부상빈백일단목상청운 (부상에 환화가피어나고) (단목에 푸른 잎이 달렸네)
天地侯初建 山河氣不分 •천지의 제후국들이 처음 세워지고
천지후초건산하기불분 •산하의 기운은 아직 나누어지지 않았도다
戊辰千歲壽 吾欲獻吾君 •무진년부터 천년 장수 하셨으니
무진천세수오욕헌오군 •나는 우리 임금께 받치고 싶어라
여기서 부상(扶桑)은 무궁화 나무이다. 이러한 근거는 앞서 보았던 단재 신체호 선생이 지은 소설 《구미호와 오제》에서 ‘부상(扶桑)은 일명 무궁화나무라고도 한다. 무궁화는 부여의 신성한 나무인데 그 잎이 뽕나무와 비슷하다 하여 부상이라 일컫는다.’라고 적고 있다. 또 중국 이시진(李時珍)의 《본초강목》에서도 부상(扶桑)은 무궁화라고 밝히고 있다.
부상扶桑은 남방 지역에서 나고, 목근木槿의 별종이다.
가지는 부드럽고 약하며, 잎은 짙은 녹색이고 뽕잎처럼약간 껄끄럽다.
라고 하여 부상(扶桑)이 무궁화의 일종임을 밝히고 있다.
그런데 위의 시에서 무궁화 나무의 이름인 목근(木槿), 근수(槿樹) 등을 쓰지 않고 굳이 부상(扶桑)을 쓴 이유는 뭘까?
《산해경》에서 부상(扶桑)의 가지에는 열 개의 태양이 달려있고, 여기서 태양이 떠오른다고 하였기 때문이다. 즉 무궁화 나무는 태양이 달리는 부상(扶桑)에 비유하고, 흰 태양(白日)은 백단심 무궁화를 비유한 것이다. 그리고 부상(扶桑)의 댓구로 단목(檀木)을 적고 있다. 부상에는 태양 꽃 무궁화가 피고, 단목에는 푸른 잎이 달리는 것을 비유한 것이다. 단목(檀木)은 또한 천년 장수한 단군(檀君)을 은유적으로 나타내기 위해 도입한 것으로 보인다.
이상과 같이 부상(扶桑)은 단목(檀木)이고, 단목(檀木)은 무궁화 나무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나무 ‘목(木)’자는 나무 ‘수(樹)’자와 동일한 뜻이므로 단목(檀木)은 단수(壇樹)이고, 제천단에 심었던 신단수(神壇樹)가 된다.
근수(槿樹)= 박달나무 = 단목(檀木) = 단수(壇樹) = 신단수(神壇樹)
박달나무가 바로 무궁화나무이고, 신단수가 바로 무궁화 나무라면, 무궁화나무는 우리 역사와 함께한 나무가 되고, 무궁화는 우리역사화 함께한 꽃이 된다.
《삼국유사》에는 환인의 아들 환웅이 풍백, 우사, 운사와 3000무리를 거느리고 태백산 정상의 신단수(神壇樹) 아래로 내려왔다고 하였다.
《제왕운기》에도 제(帝) 환인(桓因)에게 서자가 있는데 환웅(桓雄)이라. 환웅은 천부인 3개를 받고 귀신 3000명을 데리고 태백산 꼭데기 신단수(神檀樹) 아래로 내려왔으니 이분을 단웅천왕(檀雄天王)이라 한다고하였다.
《삼성기 전 하편》에도 환웅이 3000무리를 이끌고 태백산 꼭대기 신단수(神壇樹) 아래 내려왔다고 하였다.
《규원사화》에서는 환웅천왕은…3000무리를 거느리고 태백산 단목(檀木, 박달나무)아래로 내려오셨다고 하였다.
《단군세기》에서는 신인왕검이 오가의 우두머리로서 800무리를 이끌고 와서 단목(檀木, 박달나무)의 터에 자리잡았다고 하였다.
지금까지 우리 고대사에서 풀이했던 박달나무가 무궁화나무이고, 환웅이 오신 신단수가 무궁화나무숲이라면 무궁화에 대한 우리의 역사적 관점은 모두 달라지게 될 것이다. 즉 무궁화는 우리민족의 시작과 함께 해온 꽃이요, 가장 신성시되고 숭상되었던 꽃이 된다. 무궁화가 우리 민족의 꽃이 되고, 현재 나라꽃이 되었던 이유는 단지 아름다워서, 혹은 우리나라에 자생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우리 역사의 시작점에서부터 신성시되었던 꽃이고 유구한 역사동안 함께 해왔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무궁화는 다른 나라의 국화(國花)와는 또다른 면모를 보여준다고 하겠다. 그리고 우리나라 국화(國花)로서 근대에 와서 정해진 것이 아니라 이미 환국시대부터 정해져 내려왔다고 할 수 있겠다.
